ㅎ
ㅏ
루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에
눈을 뜬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미닫이문이 삐걱 열리고
찬 공기가 방 안에 들어온다.
봄은 아직 이른 아침에
차갑다.
보리차 한 모금.
따뜻함이 천천히
손끝까지 퍼진다.
신문 배달 소년의
자전거 벨 소리가
골목을 가로지른다.
고양이가 양지바른 곳을
찾아 느릿느릿 걸어간다.
오늘도 제자리.
빨래가 줄에 걸려
바람에 천천히
흔들린다.
햇살이 모든 것을 하얗게 물들인다. 그림자는 발밑에 웅크리고, 세상은 잠시 멈춘 것처럼 선명하다.
"밥 먹었어?"
어디서든 들리는
한국의 인사.
점심 식탁 위
반찬 접시들이
작은 우주를 이룬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사무실 창가에 앉은 사람이
잠깐 바깥을 본다.
하늘이 높다.
시장 골목은 한낮에 가장 활기차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노래가 된다. 과일 향기, 생선 비늘의 반짝임,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버스 정류장 그늘에서
할아버지가 부채질을 한다.
여름도 아닌데.
카페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어본다.
한낮의 정적.
모든 것이 존재하고
모든 것이 충분하다.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우리도 가장 짧아지는
시간.
오후 세 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나른함 -- 식곤증. 점심을 먹고 돌아온 사무실에 졸음이 내려앉는다. 모니터 불빛이 눈을 찌르고,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는 시간.
이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순간이다. 아침의 의지도, 저녁의 피로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잠깐 멈추고, 그냥 존재한다. 창밖으로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꾸벅꾸벅...나무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하루가 기울어진다.
학원 가는 아이들의
가방이 무겁다.
발걸음도 무겁다.
빛이 금빛으로 변한다.
모든 것에 윤기가 나는
마법의 시간.
편의점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세상이 달다.
해가 지고 있다.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저녁노을이 아파트 유리창에
반사되어 온 동네가
불타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가
내일이 된다.
잘자